거창 가남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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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조의3·1 운동

    1919년 3월 20일 장기리 시장일 정오에 4~5백명의 장꾼이 모여 들었다.

    그러나 이들은 장꾼이 아닌 애국지사인 가북면의 김병직과 가조면의 어명준 두 사람에 의해 독립 운동을 위해 모인 이들이었다.

    두 사람을 중심으로 시장 중앙으로 잠입하여 태극기를 높이 들고 독립 만세를 선창하였다.

    군중들은 일제히 여기에 호응하여 만세를 불렀다.

    시장과 그 주변을 얼마동안 시위한 후 김병직과 어명준 두 사람은 시위 대열에서 빠져 나와 가북면에 있는 용산리 일본헌병 분견소로 달려갔다.

    두 사람은 분견소로 들어가 비치 문서를 모두 찢어 버리고 유리창과 기물을 모조리 파괴하고 의자에 앉아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일본헌병은 만세 사건의 주동 인물로 지목되는 60명을 묶어 밤늦게서야 돌아왔다.

    끌려온 60여 명과 두사람이 합세하여 일본헌병들과 난투극이 벌어졌으며 총검을 가진 일본헌병에게 포박되어 다음날 아침 그들은 거창읍 일본 헌병대로 압송되었다.

    이 소식을 전하여 들은 애국 민중들은 의분을 참을 길이 없었다.

    이에 애국지사들은 서로 연락하여 가조면 석강리 정자나무 아래에 모여 비밀 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하였다.

    이들은 다음날인 3월 22일 거창읍 장날을 이용하여 거사하기로 결정하고 가조면, 가북면을 비롯한 각처의 애국 군중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주도면밀한 계획에도 불구하고 뜻하지 않게도 정보가 누설되어 22일 아침, 거창에 주둔했던 일본 헌병들은 가조면 장기리로 달려와 주동 인물들을 끌고가 취조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가조·가북면의 주민 약 3천 명은 오후 2시 30분경 각자 몽둥이를 가지고 나왔으며 독립만세라고 대서한 기치를 장기리 만학정 앞에 세운 후 이곳에 집합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어 이들은 취조 중에 있던 주동 인물을 구출한 후 행렬을 이루어 거창읍으로 향하였다.

    시위 행렬이 살피재에 이르렀을 때 이미 거창 일본군 헌병대와 용산 일본헌병 분견대는 합세하여 군중들의 진로를 차단하고 총로로써 위협하면서 해산을 명하였으나 군중은 응하지 아니하였다.

    드디어 일본헌병의 횡포가 심해지자 군중은 아우성을 치면서 일제히 일본헌병들을 향하여 돌진하였다.

    이 때 포진하였던 일본헌병들이 총격을 가하여 다수의 사상자를 내게 되었다.

    • 3·1 문화재

    2005년 올해로 3회의 행사를 진행한 거창군 가조.가북 3.1문화재는 1919년 20~22일 가조, 가북면에서 면민 3천여명이 일본 헌병대와 충돌에 의해 10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대표자들은 체포된 사건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3.1문화재 추진위원회의 진행으로 19일 오전 10시 가조면 3.1운동 기념탑의 추모제에 이어 기념탑-가조장터 구간의 사건재현행사, 거창삼베일소리공연, 군악대 및 의장대 시범, 대동줄다리기 등 다채로운 행사를 진행하였다.

    또 3.1기념마라톤과 무대공연, 3.1가요제, 마당극 등의 공연과 딸기농장체험, 천연염색체험, 솟대만들기체험, 생활도자기체험, 풍선아트체험, 짚공예체험, 각종 민속놀이, 소달구지타기, 떡메치기 등 체험행사를 진행했다.

    추진위 관계자는 "가조.가북 3.1문화재는 3.1운동 정신을 계승하고 향토문화재를 통한 민족문화보전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목적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가조가북 3·1 문화재]